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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을 열심히 살며 받은 모든 상금과 소득을 끌어모아 준비한 자금에 부모님의 약간의 도움이 얹혀 성사된 32일간의 유럽일주가 더 이상 계획으로만 남아있지 않은 순간이 온 것이다.

외출 준비를 모두 마치고 캐리어의 지퍼를 잠그는 순간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내 비행기가 12시 25분 출발이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너무 빠르지 않은 9시 쯤 출발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찍은 마지막 사진, 앞으로 수많이 그리워하게 될 거리였다.

친절하신 아버지께서 아들의 출국 소식을 듣으시고 반차까지 써주시며 공항에 동행해주셨다. 나는 스텐바이 티켓을 사용해 오늘 출발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신경써주신 아버지께 감동할 뿐이었다. 

2월 2일 출발분의 스텐바이 티켓은 자리가 매우 오르락 내리락 했다. 바로 다음날인 2월 3일분 비행기의 잔여 좌석이 37석 가까이 남은 것에 비해, 내 비행기의 좌석은 10석 ~ -1석을 왔다갔다 했다. 특히 출발 이틀 전부터 -1로 내려간체 곧장 바뀌지 않던 잔여좌석수는 나를 불안에 떠는 오징어채로 만들었다. 2월 2일날 비행기를 타지 못하더라도 2월 3일날 잔여 좌석을 타고 가면 되기에 여행 자체가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여행 첫날에 내가 영국에서 가장 보고싶었던 것 중 하나인 과학박물관과 70mm 필름 IMAX를 잡아두었기에 이를 놓친다면 매우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정말 기적처럼 다행히도 2월 2일 자정에 -1석이 0석이 되었고, 출발 3시간 전에 누군가 예약을 취소하며 잔여좌석이 한 자리로 늘어났다. 공항에 도착해 직원 전용 카운터에서 잔여 좌석 신청을 할때의 떨림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마지막 한 자리에 정확하게 내가 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운이 좋았던 순간이 아닌가 싶다. 

집에서 공항까지는 공항버스 리무진을 타고 이동했다. 저번 12월 마지막주에 베트남에 간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타는 공항 리무진이었다. 사실 1월 14일에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다녀오기로 계획되어 있었기에 리무진을 한번 더 탈 예정이었지만, 1월 1일 새해 시작에 딱 맞춰 일본에서 지진이 나는 바람에 여행이 취소되어 타지 못했다. 한달만에 리무진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30분을 달려 송도를 지나 인천공항에서 짐을 내리고 아시아나 카운터로 이동했다. B 카운터의 왼쪽 맨 끝의 직원 전용 창구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생각보다 수월하게 체크인이 끝났고, 나는 확정 표를 받았다. 5일동안의 긴장이 무색할 정도로 체크인은 빠르게 끝났다. 비록 창가자리나 복도쪽 자리가 아닌 중간 좌석이었지만 탑승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 비행기에 타기 전 식당에서 김치볶음밥을 먹고, 슬슬 회사로 출근 준비를 하시는 아버지를 출국장 입구에서 배웅해드린 뒤 면세 구역에 진입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수많은 '최초'를 안겨준 여행이 될 터이다. 처음으로 혼자서 가는 여행이자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이고, 동시에 목적지가 한 도시가 아닌 최초의 여행이기도 했다. 비행기 뿐만 아니라 배와 기차까지 타는 여행이기도 하고, 3개 이상의 국가를 여행하는 첫번째 경험이기도 했다. 동시에 친구와 함께하는 첫 번째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첫 번째 목적지인 영국도 이전에 가본 적 없었다. 여행을 계획하며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은 있어도 떨리는 일은 없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만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여행을 함께할 내 친구는 하루 먼저 출발해 이미 영국에 도착해 있었다. SKT 혜택에 힘입어 아침에 나에게 건 국제전화로 공항에서 호텔까지 오는 길을 설명해두었다. 본인 말로는 서울 지하철을 타는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안전하다고 하여, 세기말 치안을 걱정하고 있던 나의 근심을 크게 덜어주었다. 그 말이 사실이기를 바란다. 

플렉스 이코노미 좌석. 다리공간이 넓다!

14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이었지만 약간의 행운이 나와 함께했다. 마지막 남았던 자리가 그냥 이코노미가 아닌 플렉스 이코노미였던 덕에 다리 사이의 간격이 넓었던 점과, 내 양쪽으로 앉은 두분이 부부셔서 나와 자리를 바꿔주셨다. 덕분에 나는 복도쪽 좌석에 앉아 쭉 뻗은 다리와 함께 편안한 비행을 할 수 있었다. 전쟁 때문에 러시아 영공을 지나지 못해 튀르키에 방향으로 쭉 돌아가 3시간이 더 걸렸지만 동물의 숲과 최애의 아이의 힘을 빌려 나름대로 심심하지 않게 영국에 도착했다. 

의외로 최애의 아이가 명작이었다. 이 애니메이션을 추천해준 변승빈에게 감사를 표한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중년의 한국인 부부셨는데, 긴 비행 시간동안 어쩌다 말을 트게 되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분들의 말씀에 따르면 그분들은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영국으로 떠나 그곳에 정착하게 되셨다고 한다. 그 후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지금은 자식들까지 모두 독립시킨 후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다. 내가 직접 모은 돈으로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한다고 하니 굉장한 관심을 보이셨다. 가봐야 할 명소들과 생각지 못했던 주의사항들을 들으며 앞으로 펼쳐질 고난에 조금이나마 대비를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뵌 사람들이 그랬다는 것 자체가 거의 운명이었지 않나 싶다. 

비행기에서 착륙 직전에 본 구름 위의 노을이 아주 멋있었다. 저 두꺼운 구름 아래에 비가 쏟아지는 런던이 있다...

길고 긴 비행 끝에 내가 탄 비행기는 노을이 져가는 해질녘의 런던에 착륙했다. 사시사철 비가 내리고 흐린 런던의 악명높은 날씨는 이미 귀에 딱지가 잡힐정도로 들어 잘 알고있었지만 두꺼운 구름층을 뚥고 내려가는 비행기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면서야 비로소 실감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으로 느낀 런던의 날씨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공기는 습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영하의 추위를 견디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물론 기온이 14도에 육박해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은 페딩이 매우 덥게 느껴졌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반겨준 오류난 안내화면. 사람 사는곳은 어디나 다 똑같다.

전날 친구가 미리 겪고 알려준 바에 따르면 히드로 공항은 수하물이 아주 늦게 나온다고 한다. 가끔 수하물 분실 사고도 일어난다고. 두 이야기 모두 다행히도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내 캐리어는 아주 빠르게 내 손 안에 들리게 되었다. 

디자인 덕분에 국경을 넘는다는 느낌이 물씬 든다.

캐리어를 찾아 영국 입국 심사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는데, 천장 디자인이 가로로 줄을 그어놓은 듯이 생기고 "Welcome to the UK Border" 이라는 표지판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국경을 넘는다는 느낌을 물씬 뽐내고 있었다. 드디어 영국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기뻐하고 있는 나를 놀라게 만든 또 다른 것은 한국인들은 eGate로 무인 입국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순간 국뽕이 차올랐다. 내가 들어간 창구가 오류를 일으켜서 결국 유인 창구에서 심사를 받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유인 창구에는 매우 피곤해보이는 백인 직원 하나가 앉아 한국인으로 보이는 다른 여행객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슬프게도 그 한국인 여행객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파파고를 애타게 찾지만 인터넷 연결에 실패한 그는 결국 공항 보안 직원들의 안내에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동정심을 느낄 겨를도 없이 나의 심사 차례가 다가왔다. 심사는 의외로 까다로웠는데, 직원은 정말 이것저것 물어봤다. 무슨 목적으로 왔냐, 일행이 있냐, 일행이 있으면 넌 지금 왜 혼자냐, 숙소는 어느 지역에 잡았냐, 얼마나 머물거냐, 여행 후에는 다른 유럽국가로 이동할거냐 등등. 정말 모든 것을 다 물어봤다. 오랜만에 생존 영어에 불이 붙는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답을 하고, 마무리 인사로 Sir이라 불러주자 고마워하던 것을 보며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것을 느꼈따. 

지하철 입구를 찾아 공항을 거의 30분 가까이 해맸다. 알고보니 내가 타는 노선은 복잡한 환승통로 너머에 있었다.

내가 잡은 숙소는 Eurl's Court 역 근처에 있는 작은 호텔로, 조식은 제공되지 않지만 지하철 역과 가까우면서도 미쳐버린 영국 물가 속에서 나름 합리적인 가격으로 잡을 수 있는 숙소였다. 성인 2명 7박 8일 예약에 총 40만원 정도가 나왔으니, 인당 20만원인 매우 저렴한 숙소였다. 아무튼, 그 숙소로 가려면 Picadelly Line을 타야 했었는데, 정작 지하철을 타는 입구 쪽에는 Elizabeth Line 표기만 되어있었다. 지하철 입구를 찾으러 거의 30분 가까이 서성인 것 같다. 결국 반쯤 포기한다는 생각으로 Elizabeth 입구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 작은 쪽문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다. 건물 설계한 사람 얼굴좀 보고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지하철 교통카드 기계에서 오이스터 카드를 발급받는 모습

그때쯤 숙소에 도착해있는 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 친구가 말하길 오이스터 카드(영국 교통카드)는 지하철 역 맨 앞에 있는 커다란 기계에서만 신규 발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계의 카드 리더기가 고장나 트래블월렛이 결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는 지하철 직원의 안내를 받아 다른 신용카드로 결제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항 직원들이 하루만에 기계를 고쳤는지, 나는 아무 문제 없이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해주니 매우 어이 없어 하더라.

스크린도어가 없고 레일에 직접 전기를 흘리는 유럽식 상남자 지하철
튜브 내부는 둥글고 작았다...

지하철은 그리 늦지 않게 도착했다. 당연히 유럽이라 스크린도어는 없었다. 지하철은 매우 둥글고 작았는데, 이 지하철의 별명이 '튜브'인 이유를 정말 잘 알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지하철을 타본 경험이 거의 없던지라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하지만 10분 정도 타니 서울지하철이 그리운건 어쩔 수 없었다. 우선 에어컨이 없었고, 기차는 굉장히 시끄러웠으며, 지하로 들어가면 데이터 통신이 터지지 않았다. 처음에 나는 내가 산 eSIM이 잘못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영국 지하철에서는 셀룰러가 터지지 않는다더라. 그래도 내가 타고있는 지하철이 만 150살이 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30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간 끝에 Eurl's Court 역에 도착했다. 

묵었던 호텔의 모습. 첫날 마주한 영국의 밤길은 썩 나쁘지 않았다.

오후 7시 40분이라는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 주변은 꽤나 사람들이 많았다. 유럽 치안에 대한 첫인상이 나름 나쁘지 않았다. 호텔은 지하철 역 입구에서 바로 3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생긴게 누가 봐도 일반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호텔인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친구가 카운터에 맡겨둔 방 키를 챙겨 방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그 녀석이 보였다. 사람 긴장이라는게 그렇게 빠르게 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의 32일간의 유럽일주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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